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10년 가까이 됐다. 아직 쓴 책은 없다. 생각만 있고 시작이 없는 상태로 10년. 최근 책쓰기 세미나를 들었는데, 이 강의가 다룬 게 정확히 그 지점이었다. 어떻게 시작하는가.

글감이 없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고 있다

강의에서 가장 뼈아팠던 문장이다. 나는 늘 “쓸 만한 게 정리되면 쓰겠다”고 미뤄왔는데, 강사의 진단은 반대였다. 글감은 매일 지나가고 있고, 내가 그걸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

글감의 신호는 네 가지다.

  • 감정 — 불편함, 기쁨, 서운함처럼 마음이 살짝 방향을 바꾼 순간. 단, “화가 났다”고 쓰지 말고 표정·행동·말을 쓸 것
  • 균열 — 익숙한 것이 어긋난 순간
  • 질문 — 답 없이 맴도는 물음
  • 대화 —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남은 순간

그리고 확장의 원리. 독자는 작가의 경험 자체에 관심이 없다.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글감은 씨앗이고, 의미·해석·독자·공감을 더해야 한 편이 된다.

초보일수록 사소하게, AI는 퇴고에만

두 가지가 더 남았다. 초보 작가는 무게감 없는 사소한 일상으로 써야 부담이 없어진다는 것. 그리고 AI는 나를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거드는 도구로, 주도권을 지키며 정리와 퇴고에만 쓰라는 것. AI로 글을 쓰는 시대에 이 경계선은 곱씹을 만하다.

그런데 내 책에 맞나

여기서 솔직한 유보가 하나 있다. 이 방법론은 에세이 위주다. 내가 쓰려는 책은 현장 경험과 연구를 엮은 전문서에 가깝다. 감정과 일상에서 출발하는 에세이 작법이 밀도 있는 전문서·연구서에 그대로 이식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결론은 반반이다. ‘시작하는 기술’로는 이 방법이 맞다 — 10년 미룬 사람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목차가 아니라 낮은 진입 장벽이니까. 다만 전문서의 작법은 따로 찾아야 한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른다. 일단 사소한 것부터 쓰기 시작하면서 찾아볼 생각이다.


In English — Learning to Start the Book I've Postponed for a Decade

The author has intended to write a book for nearly ten years without producing a single page. A writing seminar addressed exactly that gap: how to start. Its sharpest diagnosis — you don’t lack material; you let it slip away daily. Material signals itself through four cues: emotion, rupture, questions, and conversations, and readers care not about your experience but about your interpretation of it. Beginners should write about small, weightless everyday things to lower the barrier, and AI should assist only with editing and polishing while the writer keeps authorship. The author’s honest reservation: this is an essay-centric methodology, and the professional, research-based book he envisions may need a different craft — one he hasn’t found yet. His resolution is to start small anyway and search as he writes.